한국 남자 찌질하다고? 여성 차별만 있다고?

아직도 군대문화 버젓한 회사서 전쟁하듯 버티는 사내들 여린 가슴도 온통 상처투성이라고요… 혼자 훌쩍 떠날 수 있는 나만의 휴식이 필요해

김윤덕 기자 삼복더위에 노고가 많으십니다. H주식회사 영업과장으로 일하는 강아무개입니다. 일면식도 없는 분께 무례인 줄 알지만, 꼭 드려야 할 말씀이 있어 용기를 냈습니다. 마침 당직 중이고, 창밖엔 장대비가 쏟아집니다. 상반기 영업 실적이 사상 최저라고 전 부원이 전무님 방에 불려가 초토화된 일을 안주 삼아 저녁 자리에서 소주도 한 잔 걸쳤습니다. 아, 실례가 안 된다면 '누님'으로 호칭해도 될는지요.

 

누님의 '병법'은 짬짬이 즐겨 읽습니다. 미주알고주알 여자들 사는 풍경을 정체불명의 사투리를 섞어 풀어내는 솜씨가 제법이더군요. 처음엔 멋모르고 낄낄대며 읽었습니다. 스크랩해서 아내에게 선물도 합니다. 그런데 읽으면 읽을수록 기분이 나빠집니다. 뭔가에 속은 듯도 하고, 살짝 빈정도 상하고요. 대체 뭘까. 하루 날 잡아 행간을 따져가며 읽고 나서야 그 이유를 알았습니다. 찌질한 남자들을 통 크게 건사하며 사는 대한민국 여자들 만만세! 이유불문 만만세! 풍자와 해학을 가장한 누님의 글에는 이런 불온하고도 억지스러운 이데올로기가 시종일관 흐르고 있었던 겁니다.

 

찌질한 남자? 부인하지 않겠습니다. 그런데 오지랖 넓고 통 큰 여자들은 자신의 반려가 '소심남'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연유가 무엇일까, 생각해본 적은 있는지요. 여성 차별이라 하셨는데, 남자라서 당하는 고충도 그에 못지않습니다. 특히 숫자 싸움을 전쟁처럼 치르며 살아야 하는 영업파트는 군대나 다름없습니다. 꼴통 상사라도 만나면 "네 짬밥이었을 때 나는 야전침대 갖다놓고 사무실에서 밤새워서 일했어. 빠~져가지고"라는 소리를 귀가 닳도록 듣습니다. 회식은 해이해진 기강을 잡겠다는 애국 조회의 연장이고, '시정하겠습니다'를 연발하느라 소주 한잔 맛나게 넘길 틈이 없습니다. 워크숍은 해병대식 극기훈련소에서 하면서 글로벌 시대에 걸맞은 스마트하고 크리에이티브한 아이디어를 내라니 머리에 땀띠가 나다 못해 분화구가 생깁니다. 거기에 왕소금을 뿌리는 건 신세대라 자처하며 들어온 아랫것들입니다. 상석(上席)이 어딘지도 모르고, 젓가락질할 줄도 모르고, 시(詩)가 뭔지도 모르는 것들이 그저 스펙만 믿고 들어와 하늘 같은 선배를 구닥다리 장롱 취급합니다. 이런 인류를 본 적이 없는 상사들은 그 애들이 '창의적'이라며 침을 튀기니, 공중부양 유체이탈하고 싶은 심정입니다.

 

그렇다고 집에 돌아와 따뜻한 위로를 받는 것도 아닙니다. 주말만이라도 심신의 모든 전등을 꺼버리고 싶은데 존경하는 마눌님이 그냥 놔두질 않습니다. 자식 성공이 아버지에게 달렸다는 말도 오바마가 한 건가요? 오바마 말씀이라면 무조건 할렐루야 하는 마누라는 이번엔 또 '스웨덴 대디'가 되라며 자녀교육서를 들이밉니다. 그러면 아이비리그 갈 수 있다니 천근만근 무거운 몸을 일으킵니다. 아이의 두뇌를 아인슈타인처럼 바꿔주는 블록을 쌓아야 하고, 아이의 장딴지를 박태환처럼 여물게 하는 인라인을 가르쳐야 하며, 아이의 상상력을 피카소처럼 키워주는 명작 읽기를 해야 합니다. 그렇다고 남편 대접이 후해지는 건 아닙니다. 라면 한 개라도 아들놈 먹이려고 끓이는 법은 있어도 남편 먹이려고 끓이는 법은 없으니까요. 그 마음이 섭섭합니다. 왕고 부장한테 받은 스트레스 하소연 좀 할라치면 면박부터 날아옵니다. '당당히 항의하지, 왜 푸념만 하고 살아?' 어깨만 한 번 안아줘도 힘이 불끈 솟는다는 걸 그녀는 정녕 모를까요? 언제는 내가 자기 인생의 내비게이션이라더니, 환상의 짝꿍이라더니.

 

아버지가 그립습니다. 그 쩌렁쩌렁하던 목소리가 그립습니다. 맹장(猛將), 덕장(德將) 다 필요 없고 '운짱'이 최고라며 호기를 부리던 사내였지요. 달리는 트럭에 부딪혀 휴지처럼 구겨진 자동차 안에서 뒤통수에 꽂힌 유리조각을 손으로 뽑으며 유유히 걸어나오던 불사조였습니다. 첫째도 폼생폼사, 둘째도 폼생폼사였던 아버지가 이렇듯 비틀대는 아들을 보면 무슨 말씀을 하실까요? 아버지들이 옳았다는 게 아닙니다. 가끔은 그들의 대책 없는 허풍이 그립습니다. 목말을 높이 태워주시며 대장부의 포부는 하늘처럼 높아야 한다, 진주를 캐려면 푸른 바다에 뛰어들어야 한다고 당부하셨는데 저는 고작 빌딩숲 콘크리트 사무실 안에서 상사 눈치, 후배 눈치 보며 인생을 궁싯대는 못난 사내가 되었습니다. 국물 내면 버려지는 '며루치'가 될까봐 아내 눈치, 아이들 눈치 보며 사는 졸장부가 되었습니다. 요즘은 개콘을 봐도 웃음이 안 나옵니다. 빈 사막을 홀로 걷는 수도승도 이렇듯 외롭진 않을 겁니다.

누님, 이번 여름휴가 중 하루만은 나를 위해 쓰고 싶다고 말한다면 이기적인 남편일까요? 혼자서 영화 보고 낚시하고 꺼이꺼이 전인권 노래 부르면서 훌쩍 떠나고 싶다면 비정한 아빠일까요?

 

[김윤덕의 新줌마병법] 어느 이기적인 샐러리맨의 告白 / 김윤덕 기획취재부 차장 / 2012.07.09 23:29

 


짜루

2012.07.12 18:40:33

에이~ 계란탁 파송송 얼큰한 라면 한사발에 내일은 밝을거야 믿는  우리네 아빠들!

 

쩌렁쩌렁목소리에 불사조같고 대장부포부에 그런 아버지의 모습은 상상만으로도 하늘같아지지요.

 

나를위해 쓰는 하루의 시간? 이기적인건가요..

 

..우울합니다..현대인들...삶이 팍팍하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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